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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짧은 답

성경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고 말하지만, 응답이 언제나 우리가 구한 그대로라고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구하라고 가르치셨고, 겟세마네의 예수와 바울의 가시는 "아니오"와 "내 은혜가 족하다"도 응답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혼잣말이 아니라 살아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말이며, 그 응답을 시험관에서처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다는 말씀에서 시작합니다. 예수께서는 산 위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이어서 예수께서는 땅의 아버지를 예로 드십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줄 아버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맺으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1). 기도의 바탕은 기술이나 공식이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누가복음은 같은 가르침에서 "좋은 것" 대신 성령을 말합니다 (눅 11:13).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응답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말을 많이 할수록 기도가 힘을 얻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시고 (마 6:8), 곧바로 짧은 주기도문을 가르치셨습니다. 한편 끈질기게 구하라고도 하십니다. 불의한 재판관에게 매달린 과부의 비유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려고 하신 말씀입니다 (눅 18:1). 이 비유는 하나님이 불의한 재판관과 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마침내 들어주었다면, 밤낮 부르짖는 자녀의 소리를 하나님이 외면하시겠느냐는 말입니다 (눅 18:7).

기도의 약속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3

"내 이름으로"는 주문 끝에 붙이는 말이 아니라, 예수의 뜻과 성품에 맞게 구한다는 뜻입니다. 요한일서는 이것을 이렇게 풀어 줍니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4). 야고보는 받지 못하는 기도의 한 이유를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말합니다 (약 4:3).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꺾는 도구가 아니라 그 뜻 안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구한 대로 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성경은 이 문제를 숨기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떠나기를 세 번 주께 간구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가시는 그대로였지만 기도는 응답받았습니다. 바울이 구한 것과 다른, 그러나 그가 더 필요로 하던 것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예는 겟세마네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 26:39). 잔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버려진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잔을 마셨고, 그 길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기도가 언제나 구한 것을 얻어 내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아들 자신이 보여 주셨습니다.

로마서는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조차 모른다고 말합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서툰 기도도 성령께서 받쳐 주십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이 말씀 앞에서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누가복음 18장의 비유를 풀면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말하고 모든 필요를 아뢰도록 허락받은 것이 복된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분은 간구를 멸시하지 않으시며, 싫증을 내시는 때는 오직 여러분이 잠잠할 때뿐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같은 대목에서 그는 하나님이 "말로는 아니라도 그 긍휼로 여러분에게 응답하십니다"라고도 씁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응답이 늘 말이나 사건의 모습으로 오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매튜 헨리는 바울의 가시를 풀이하면서 응답받지 못한 기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도를 받으시지만 구한 것을 언제나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진노 중에 허락하시고, 때로는 사랑으로 거절하십니다" 매튜 헨리. 그는 첫 번째 기도에도 두 번째 기도에도 응답이 없다면 계속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우리가 바라는 것과 우리에게 합당한 것을 아신다고 말합니다. 부모는 흔히 어리석게 자식을 아끼지만 하나님은 전적으로 지혜로우시다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맞물리는지는 교회 안에서 의견이 갈립니다. 어떤 전통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정하시되 기도도 그분이 정하신 수단이라고 가르칩니다. 기도하는 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른 전통은 하나님이 기도에 실제로 반응하시고, 기도가 일어날 일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합니다. 두 입장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 예수께서 구하라고 명하셨다는 것, 그리고 응답이 언제나 우리의 요구와 같지는 않다는 것에서 같은 자리에 섭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기도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명사는 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일반을 뜻하며, 앞에 붙은 접두어는 "향하여"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서는 일입니다. 반면 마태복음 7:7의 "구하라"는 로, 구체적인 것을 청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기도를 막연한 명상이 아니라 필요를 아뢰는 일로 가르치십니다.

바울이 가시가 떠나기를 "간구하였더니"라고 쓴 말은 입니다. 간청하다는 뜻이며, 같은 말이 신약에서 "위로하다"로도 쓰입니다. 간청을 올려 보낸 자리에서 위로가 돌아온 셈입니다. 가시는 남았으나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으로 위로받았습니다.

흔한 반론과 답

"기도는 혼잣말일 뿐이다." 이 반론은 가볍지 않습니다. 기도에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고,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의 명상에서도 나타납니다. 응답을 헤아릴 때 이루어진 것만 기억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잊기 쉽다는 지적도 옳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실험실에서 반복해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반론은 사실 기도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물음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기도는 혼잣말일 것이고, 계신다면 기도는 대화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까닭은 효과가 있어서만이 아니라, 듣는 분이 계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께서 구하신 잔이 지나가지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혼잣말은 대개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돌려주지만, 성경이 전하는 기도는 흔히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증명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계신가라는 물음과 함께 정직하게 살펴볼 만한 단서입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죽었다." 이것은 가장 아픈 반론이며, 쉬운 대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기보다 상처가 될 때가 많습니다. 성경도 이 침묵을 숨기지 않습니다. 시편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 22:1). 예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이 말씀을 입에 올리셨습니다. 기도에는 탄식과 항의도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기도의 이유를 풀어 주신다는 약속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아들이 우리의 고난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고난에 의미가 있는가에서 더 이어서 다룹니다.

"하나님이 이미 다 아시고 가장 좋은 것을 하신다면, 왜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께서 먼저 이 물음에 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신다고 하신 바로 그 자리에서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정보를 알리는 일이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가 관계를 맺는 방식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이미 아는 것도 말하고 싶어 하고, 말하는 가운데 부모를 더 알아 갑니다. 이 기도가 일어날 일을 실제로 바꾸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기도라는 방편을 통해 이미 정하신 일을 이루시는지는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어느 쪽이든 성경은 기도하라고 명하며, 이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더 생각해 보기

기도하는 사람에게 바울은 이렇게 권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이어지는 약속은 구한 것을 반드시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빌 4:7). 응답이 눈에 보이지 않는 날에도 기도가 헛되지 않다고 믿을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분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까? 내가 오래 기도해 온 일 중에 아직 응답받지 못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정직하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까?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구한 것과는 다르지만 필요했던 것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더 읽으려면 성령은 누구신가?와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보십시오.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