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가?
성경은 하나님이 참새 한 마리와 우리의 모든 걸음까지 돌보시며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이끄신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사람의 선택과 책임도 진지하게 다룹니다. 교회는 이 둘을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강조를 두어 왔지만, 선하신 하나님의 손에 우리가 있다는 위로에는 한마음입니다.
성경의 답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말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흔들리는 삶의 닻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을 겪은 뒤에 들은 차가운 말이 됩니다. 이 글은 성경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박해를 앞두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29-31
이 말씀의 요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가장 작은 것에까지 미친다면, 그분의 자녀가 그분의 시야 밖에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바로 앞에서 예수께서는 박해와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구약의 지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사람은 계획합니다. 그 계획은 진짜입니다. 그러나 걸음의 끝에서는 하나님의 손이 있습니다. 같은 장의 33절은 제비를 뽑는 우연의 일에도 이 손이 있다고 말합니다 (잠 16:33). 요셉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형들의 악한 행동 속에서 하나님이 선을 이루셨습니다 (창 50:20). 이 이야기가 악의 문제와 맺는 관계는 선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에서 다룹니다.
바울은 이 주권이 우주 전체에 미친다고 씁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 1:11
그리고 로마서 8:28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약속합니다 (롬 8:28).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사람의 책임을 지워 버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을 두 방향에서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행 2:23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악이 하나님의 정하신 뜻 안에 있었고, 동시에 그것을 행한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도 두 가지가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2-13
"이루라"는 명령이고,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선언입니다. 성경은 둘 중 하나를 버려 균형을 잡지 않고 둘을 함께 말합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전능하신 아버지"로 고백했습니다 사도신경. 아버지라는 말은 이 전능이 차가운 운명이 아니라 돌보는 손이라는 뜻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첫 번째 물음에서 이 위로를 요약합니다. 살든 죽든 나의 유일한 위로는 내가 몸과 영혼으로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이며,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내 머리에서 머리카락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
히에로니무스는 참새의 말씀을 이렇게 풉니다. "이 작은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감독과 섭리 없이 떨어지지 않고, 멸망하도록 지어진 것들도 하나님의 뜻 없이는 멸망하지 않는다면, 불멸하는 너희는 그분의 섭리 없이 살아간다고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히에로니무스. 크리소스토무스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까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께서는 "사도들이 죽임을 당하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섭리를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섭리를 믿는다는 것은 고난이 없으리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버려지지 않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는 사도행전 2:23에서 두 방향을 모두 붙잡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간주되며, 놀라운 은혜와 지혜의 것"이라고 말하고, 곧바로 "백성의 행위로서는, 그들에게 그것은 무서운 죄와 어리석음의 행위였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매튜 헨리.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이을지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 서로 다른 강조가 있습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영원한 계획 안에서 정하시며, 사람은 자기 뜻을 따라 자유롭게 행하되 그 자유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면서도 죄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르미니우스 전통과 동방 교회, 가톨릭의 많은 신학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에 응답하는 일을 포함하여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시지만 그 앎이 사람의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으며,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서 거부당하는 일도 실제로 있다고 봅니다 (딤전 2:4). 두 입장은 서로의 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해 왔고, 한쪽이 틀렸다고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둘 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점,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라는 점, 사람은 자기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원어로 보기
사도행전 2:23의 "정하신 뜻"과 에베소서 1:11의 "뜻"은 같은 헬라어 입니다. "계획, 숙고된 결정"이라는 뜻입니다. 우연이나 변덕이 아니라 생각하고 정한 뜻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자의적인 힘이 아니라 지혜로운 계획에서 나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에베소서 1:11의 "예정을 입어"에 해당하는 동사는 입니다. "미리"를 뜻하는 말과 "경계를 긋다"를 뜻하는 말이 합쳐진 단어로, 미리 정해 두었다는 뜻입니다. 이 정함이 누구에게, 무엇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지는 교회 안에서 오래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이 단어를 쓰는 목적은 논쟁이 아니라 안심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연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정해 두셨다면 우리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가장 강한 형태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내 선택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내 선택이 아니며, 그렇다면 책임이라는 말은 빈 말입니다. 이 반론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전통은 다르게 답합니다. 개혁주의 쪽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뜻을 꺾지 않고 그 뜻을 통해 일하시므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하며 그 행위의 책임을 집니다. 아르미니우스 쪽에서는 하나님이 참된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를 존중하며 다스리신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든 성경은 사람을 꼭두각시로 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하시고 사람들은 정말로 선택하며 응답합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성경은 이 둘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풀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두 사실이 모두 성경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학살과 학대도 하나님이 주관하신 일이란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악의 책임자로 만든다." 이것은 가장 아픈 반론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악을 기뻐하시거나 승인하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보여 주듯 악한 행위는 끝까지 악이며 행한 사람들은 책임을 집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그 악을 뚫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일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받아들이라"는 말로 줄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은 성경의 방식이 아닙니다. 욥의 친구들이 바로 그렇게 말했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입을 다물라고 하는 근거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놓지 않으신다는 위로의 근거입니다.
"세상은 전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맞습니다. 성경도 이 점을 인정합니다. 히브리서는 아직 만물이 그분께 복종하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히 2:8).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이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도하라고 하고 행동하라고 합니다. 기도와 수고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경쟁하지 않고, 그분이 쓰시는 수단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더 생각해 보기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말이 가장 필요한 때는 모든 것이 무너질 때입니다. 그때 이 말은 이론이 아니라 붙잡을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다른 사람의 고난 앞에서 쉽게 꺼내서는 안 됩니다. 이 믿음은 자기가 겪는 중에 고백할 때 가장 정직하고, 곁에서 건넬 때는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 앞에서 나는 두려움과 분노 가운데 어느 쪽으로 기웁니까? 하나님이 아버지시라는 사실이 내게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나의 책임 사이에서 나는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더 읽으려면 고난에도 의미가 있는가?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보십시오. 마태복음 10장과 로마서 8장을 천천히 읽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관련 질문
- 선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성경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도 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죄로 망가졌고, 하나님은 악 가운데서도 선을 이루시며, 욥에게는 설명 대신 당신 자신을 보이셨고, 십자가에서는 고난 속으로 직접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악이 끝나는 날을 약속하십니다.
- 고난에도 의미가 있는가?성경은 모든 고난에 이유를 붙이지 않으며, 고난이 언제나 벌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탄식을 믿음의 말로 받아 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그리스도가 고난 속에 함께하시며, 고난받은 사람이 같은 처지의 사람을 위로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의미는 설명이 아니라 함께하심과 소망 안에서 주어집니다.
-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고 말하지만, 응답이 언제나 우리가 구한 그대로라고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구하라고 가르치셨고, 겟세마네의 예수와 바울의 가시는 "아니오"와 "내 은혜가 족하다"도 응답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혼잣말이 아니라 살아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말이며, 그 응답을 시험관에서처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성경은 하나님을 철학의 개념으로 그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알리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분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시며, 거룩하시고,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창조주요 아버지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셨다고 믿습니다.
관련 주제
출처
-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