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고, 창조 세계와 사람의 양심이 그분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세계의 존재와 질서, 우리 안의 도덕 감각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정표이지 수학 같은 증명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은 증거 없는 도약이 아니라, 찾는 사람에게 만나 주시겠다는 약속을 신뢰하며 계속 찾는 일입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는지를 따지는 토론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성경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전제로 말하고, 그분을 알 수 있는 길이 이미 사람 앞에 열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 첫째 길은 창조 세계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시편 기자는 계속해서 이 "말"이 언어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 "온 땅에 통한다"고 말합니다 (시 19:3-4). 하늘은 논문을 쓰지 않습니다. 다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가리킵니다. 바울도 같은 생각으로 로마서에서 이렇게 씁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롬 1:20
둘째 길은 사람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도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롬 2:15). 사람은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옳고 그름이 있다고 느낍니다.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의 흔적으로 봅니다. 이 길들을 창조와 양심이 가리키는 이정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이 이정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말합니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행 17:27
"더듬어 찾는다"는 표현이 정직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찾는 일이 쉬운 일이라고 꾸미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손을 뻗는 것 같은 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도 그분은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는 믿음의 출발점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여기서 믿음은 눈을 감고 하는 도약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 그리고 찾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에 기대어 나아가는 일입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길들을 증명이 아니라 "가리킴"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질서를 가졌다는 사실, 우리가 선과 악을 말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들이 창조주를 가리킨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이 논증들마다 진지한 비판자가 있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러 왔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닫힌 증명이 아니라 증거를 저울질하는 일입니다.
매튜 헨리는 시편 19편을 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임을 말합니다. "하늘에는 영원하시고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능하시고 선하신 창조주가 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튜 헨리. 질서 있는 세계는 그 뒤에 지혜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부들은 하나님을 안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이 죽을 몸으로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그분 본성의 실재 안에서가 아니라 어떤 형상들을 매개로 해서만" 본다고 말합니다 그레고리우스. 크리소스토무스도 그 본성은 "단순하고 형체가 없으며" 앉지도 걷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이정표는 목적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한 것보다 언제나 크십니다.
교회의 가장 유명한 증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입니다. 그는 『고백록』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 쉼이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1. 그에게 하나님은 먼저 논증의 결론이 아니라 마음이 찾던 분이었습니다. 참고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부들의 복음서 주석을 모아 엮은 책이 바로 이 앱이 인용하는 『황금 사슬(Catena Aurea)』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으로 다룬 대표적 신학자가 교부들의 증언을 가장 소중히 모은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은 기억할 만합니다.
매튜 헨리는 히브리서 11:6을 풀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려는 사람은 온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매튜 헨리.
원어로 보기
구약 첫머리의 "창조하다"는 입니다. 이 동사는 성경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주어로 합니다. 사람은 재료를 가지고 만들지만, 이 동사는 하나님의 창조를 특별하게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하나님은 세계 안의 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가 있게 하신 분이라는 뜻이 이 동사에 담겨 있습니다.
또 하나는 로마서 1:20의 "신성"으로 옮겨진 입니다. 신약에서 이 말은 단 한 번 나오고, "하나님다움", 곧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창조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다움을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분을 충분히 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물은 그분을 가리킬 뿐이고, 그분을 아는 일은 , 곧 신뢰로 이어집니다.
흔한 반론과 답
"증거가 없다." 이 반론은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험실에서 측정할 수 없고, 세상에는 서로 다른 종교가 많습니다. 믿음이 사람의 뇌와 문화에서 자라났다고 설명하는 학문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이 현미경 아래 놓이는 분이 아니라는 데 동의합니다. 하나님이 세계 안의 한 사물이라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반론에는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어떤 종류의 증거라야 충분합니까? 우리가 사랑, 정의, 수학의 진리를 믿는 것은 실험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이유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증거는 하나의 결정적 증명이 아니라 여러 실마리가 한곳을 가리키는 모습입니다. 그 실마리가 충분하다고 보는 사람과 아니라고 보는 사람이 모두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더 분명히 나타나지 않으시는가 하는 질문은 하나님은 왜 보이지 않는가?에서 따로 다룹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는가?" 이것은 오래된 질문이고, 바르게 물어진 질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답은 하나님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시 90:2). 시작이 있는 것은 원인을 묻지만, 시작이 없는 분에게는 그 질문이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답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를 뒤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신론도 우주나 물리 법칙을 "더는 설명되지 않는 것"으로 두어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어디선가는 설명되지 않는 출발점이 남습니다. 문제는 그 출발점이 생각 없는 물질인가, 지혜로운 인격인가입니다.
"과학이 이미 다 설명한다." 과학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놀라운 것을 알아냈고, 이 사실을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번개를 신의 분노로 설명하던 시절에 비하면 우리가 아는 것은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법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는 것과, 왜 법칙이 있고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지 묻는 것은 서로 다른 질문입니다. 많은 과학자가 신앙을 가졌고 많은 과학자가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과학 자체가 이 질문을 결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주제는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에서 더 이야기합니다.
더 생각해 보기
하나님의 존재는 먼저 머리로 풀 문제이기 전에, 응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성경은 이 질문 앞에 선 사람에게 증명서를 내밀지 않고 초대장을 내밉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이 약속은 압박이 아닙니다. 지금 확신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의심하면서 찾는 사람도 찾는 사람입니다. 매튜 헨리는 이 구절 곁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나를 헛되이 찾으라"고 하신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 또는 계시기를 바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느끼는 이정표는 세계, 질서, 양심 가운데 어느 것입니까? 오늘 마음을 다해 한 번 찾아본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겠습니까?
더 읽으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때 그분이 어떤 분인지가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관련 질문
-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성경은 하나님을 철학의 개념으로 그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알리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분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시며, 거룩하시고,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창조주요 아버지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셨다고 믿습니다.
- 하나님은 왜 보이지 않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창조와 성경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자신을 알리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숨어 계신 듯한 때가 있다는 것도 성경은 숨기지 않고, 탄식의 시편으로 그 아픔을 기도의 말로 삼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숨어 계심이 강요하지 않고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방식과 이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성경은 세계를 질서 있게 지으신 하나님을 말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을 탐구하는 일이 그 지혜를 살피는 일이라고 보아 왔습니다. 과학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묻고, 성경은 거기에 더해 누가 왜 지으셨는지를 묻습니다.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있지만, 모두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데에는 하나입니다.
- 성경은 믿을 만한가?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책이라고 소개합니다. 필사본의 수와 이른 시기, 사해 사본 같은 발견은 오늘의 성경이 기록 당시의 본문을 매우 가깝게 전한다고 믿을 근거를 줍니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신뢰할 이유이며, 정직한 의문은 그 신뢰를 시험하는 일이 됩니다.
관련 주제
출처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1 —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 쉼이 없습니다.'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