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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짧은 답

성경은 하나님을 철학의 개념으로 그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알리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분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시며, 거룩하시고,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창조주요 아버지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셨다고 믿습니다.

성경의 답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사람이 상상으로 그릴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스스로 말씀하신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하나님은 자기를 다른 무엇에 의존하지 않고 계시는 분으로 밝히십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분은 이 이름이 "나의 영원한 이름"이라고 하시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기를 소개하십니다 (출 3:15). 영원히 계시는 분이 한 가족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자기 이름을 선포하실 때,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풀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출 34:6

이 말씀은 구약 곳곳에서 되풀이됩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은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출 34:7). 자비와 공의는 모두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성경은 둘 가운데 하나를 지워서 하나님을 단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스랍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3

"거룩하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다르시며, 우리가 만든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시편은 그분이 시간에 매이지 않으신다고 노래합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90:2). 말라기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말 3:6).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한마디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하나님은 몸이 없으시므로 한 산이나 한 성전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분의 가장 깊은 성품을 이렇게 씁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그렇다면 이 하나님을 우리는 어디에서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은 이렇게 답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예수께서는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요 14:9).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면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그분의 자비, 그분의 거룩한 분노, 그분이 십자가에서 보이신 사랑이 하나님의 성품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또한 창조주이시며 (창 1:1), 믿는 이들이 "아버지"라 부르도록 허락하신 분입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 "나는 스스로 있는 자"에서 오랫동안 깊은 의미를 읽어 왔습니다. 매튜 헨리는 출애굽기 3:14를 풀며 이 이름이 뜻하는 바를 몇 가지로 정리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자존하시니, 그분의 존재는 자기에게서 나옵니다". 또한 "영원하시고 변하지 않으시며". 그리고 "불가해하시니, 우리는 찾아서 그분을 알아낼 수 없으며" 이 이름은 하나님에 관한 모든 대담하고 호기심 어린 탐구를 막는다고 합니다 매튜 헨리.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그분을 다 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를 교부들은 이렇게 풀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이것이 하나님이 "형체가 없으신 분이심을 뜻하며" 그래서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예배받으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오리게네스는 이 말씀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곧 "우리의 호흡(영)이 우리 몸의 생명을 이루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된 생명을 이루신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말씀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조심스럽게 설명합니다. 두 사람이 매우 닮았을 때 한 사람을 보았으면 다른 사람을 본 것이라고 말하듯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는 말씀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의 완전한 닮음이시라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사랑에 대해서는 매튜 헨리가 이렇게 씁니다. 사랑이 가장 영광스럽게 나타난 모습을 찾아 온 우주를 뒤져 보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십자가에서 발견됩니다" 매튜 헨리.

초대 교회의 신조는 이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은 하나님이 영이시며 그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실하심에서 무한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Q4.

원어로 보기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입니다. 네 자음으로 쓰이는 이 이름은 "있다"는 동사 와 관련이 있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출애굽기 3:14의 말씀과 이어진다고 봅니다. 옛 이스라엘은 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으려고 "주"라고 바꿔 읽었고, 한국어 성경이 "여호와"와 "주"를 구분해 쓰는 데에도 그 전통이 이어져 있습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이 단지 힘센 신이 아니라 약속하고 지키시는 분임을 가리킵니다.

또 하나는 입니다. 이 말은 모양으로는 복수형이지만, 하나님을 가리킬 때는 보통 단수 동사와 함께 쓰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위엄을 나타내는 복수로 읽고, 어떤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후에 삼위일체의 풍성함을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이 점에서 해석이 갈린다는 것을 알아 두면 좋습니다. 확실한 것은 성경이 이 말로 하나님이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하신 분이심을 말한다는 점입니다 (사 45:5).

신약의 는 구약의 이 이름들을 헬라어로 옮긴 말입니다. 특별한 것은 신약 기자들이 이 말을 아버지에게만 아니라 예수에게도 쓴다는 점입니다 (요 1:1). 이 점은 삼위일체란 무엇인가?에서 이어서 생각합니다.

흔한 반론과 답

"하나님은 인간의 투사일 뿐이다." 이 반론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합니다. 사람은 실제로 신을 자기 모습과 소원에 맞추어 만들어 왔습니다. 두려움이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신 관념의 뿌리라고 설명하는 이론도 있습니다. 성경도 이 위험을 알고 있어서 우상을 그렇게 강하게 비판합니다. 하지만 이 반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어디서 생겼는지를 설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논리로 하나님이 없기를 바라는 소원에도 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의 하나님은 사람이 소원하는 신과는 여러 점에서 다릅니다.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시고, 우리의 방식에 맞추지 않으시며,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그분의 길이 우리 길보다 높다고 말씀하십니다 (사 55:8-9). 사람이 스스로 만든다면 이렇게 불편한 신을 만들었을지 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는 분이다." 구약을 읽는 많은 사람이 이렇게 느낍니다. 정복과 심판의 이야기는 실제로 읽기 어렵고, 그리스도인도 그 앞에서 고민합니다. 이것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다만 성경이 하나님을 소개하는 순서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은 먼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은 이 말씀을 되풀이하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03:9). 성경이 말하는 진노는 변덕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악과 불의 앞에서 사랑이 보이는 반응입니다. 악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하나님이라면 오히려 사랑하는 분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가?와 예수는 왜 죽어야 했는가?에서 더 이야기합니다.

더 생각해 보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먼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그분을 거룩하신 분으로, 동시에 "아버지 품 속에" 계시는 아들을 통해 가까이 오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거룩함 때문에 두려워질 수도 있고, 사랑 때문에 믿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정직한 반응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하나님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릅니까? 거룩하심과 자비하심 가운데 어느 쪽이 나에게 더 낯섭니까? 예수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본다면, 무엇이 가장 새롭게 보일까요?

더 읽으려면 예수는 누구인가?를 보십시오. 출애굽기 33-34장과 요한복음 1장을 이어서 읽는 것도 좋은 출발입니다.

출처

  1.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2.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647 — 영국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요리문답.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