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죄와 죄책과 죽음에서 건져 내시어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으로 데려가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이미 얻은 것이면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고 장차 완성될 것이며,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성경의 답
성경에서 구원은 '건져 냄'을 뜻합니다. 바울은 건져 내시기 전의 우리 모습을 먼저 그립니다. 그리고 건져 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4-5
구원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구원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로 그려집니다. 골로새서는 같은 일을 구출과 이주의 모습으로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 1:13-14
그러면 구원은 무엇에서 건져 내는 것일까요. 성경은 죄와 그 결과로 따라오는 죄책과 죽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지신다는 말도 나옵니다 (롬 5:9). 그러나 구원은 무엇에서 벗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며 영생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구원의 중심은 하나님을 아는 것,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신약은 이 구원을 여러 모습으로 풀어 줍니다. 먼저 칭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으로,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말합니다 (롬 5:1). 다음은 거듭남입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또 양자 됨이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녀이면 또한 후사"입니다 (롬 8:17). 이어 성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하신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이루어 가시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완성이 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0
그래서 신약은 구원을 세 때로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롬 8:24) 하며 이미 얻은 구원을 말하고, "구원을 얻는 우리" (고전 1:18) 하며 지금 이루어지는 구원을 말하고,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며 장차 완성될 구원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받는 길은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교회의 증언
교회는 처음부터 구원을 그리스도의 일로 고백했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성자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고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가 내가 몸도 영혼도 내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
마태복음 1:21에서 예수라는 이름의 뜻을 풀면서 레미기우스는 이렇게 씁니다. "그분은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니, 곧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데, 보이는 원수에게서보다 보이지 않는 원수, 곧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며, 무기로 싸워서가 아니라 그들의 죄를 사하심으로써 구원하십니다" 레미기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원을 의사의 치료에 빗댑니다.
의사는 자기의 뜻으로 말하자면 병자를 고칩니다. 병자가 의사의 지시를 멸시하거나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를 망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매튜 헨리는 에베소서 2장을 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하는 은혜는 하나님의 값없고 받을 자격 없는 선하심과 은총이며" 매튜 헨리. 구원은 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구원의 세부를 두고는 교회 안에서 견해가 갈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첫째, 로마서 8:30의 "미리 정하신"입니다. 개혁 전통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을 영원 전에 택하셨다고 이해하고, 아르미니우스 전통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사람이 그 은혜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둘째, 요한복음 3:5의 "물과 성령"입니다. 가톨릭과 동방 교회, 루터 교회의 많은 이들은 이것을 세례를 통한 거듭남으로 보고, 개혁 전통과 복음주의 전통의 많은 이들은 세례를 거듭남의 표로 보며 말씀하신 물을 에스겔 36:26이 말하는 정결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세례와 성찬에서 다룹니다. 셋째, 한번 얻은 구원을 잃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구원을 잃을 수 있는가?에서 다룹니다. 이 모든 교회는 구원이 그리스도의 일이며 은혜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하나입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구원을 뜻하는 말은 이고, 그 동사는 입니다. 이 동사는 위험에서 건져 내다, 병을 낫게 하다, 온전하게 보전하다는 뜻을 모두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어떤 한 가지 사건이 아니라, 건져 내시고 고치시고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돌봄입니다.
히브리어에서 구원은 이고, 그 동사는 입니다. 어원적으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나오게 하다'는 뜻으로 설명되곤 합니다. 구약의 구원은 원수와 억압에서 벗어나 숨 쉴 공간을 얻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집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이 바로 이 말에서 나왔습니다. 천사는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마 1:21).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선언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구원이라니, 무엇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인가?" 오늘의 많은 사람은 자신이 길을 잃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죄와 죄책이라는 말이 사람을 억누르는 도구로 쓰인 적도 있고, 구원이란 말에서 겁을 주어 믿게 하는 설교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지는 것이라면 정작 문제는 하나님이 아닌가. 이 물음은 진지하게 받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노는 감정을 터뜨리는 신의 변덕이 아니라, 사람을 파괴하는 악에 대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반대입니다. 그리고 구원하시는 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롬 5:8). 위협이 구원의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정말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지는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진단하느냐에 달려 있고, 이것은 죄란 무엇인가?에서 다룹니다. 지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교회 안에서도 견해가 다르므로 천국과 지옥에서 따로 살펴봅니다.
"그리스도 없이도 선한 삶이나 다른 길로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은가?" 사도행전 4:12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다만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만 구원받는다고 보는 견해가 있고, 그리스도의 일이 근거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방식으로 그것을 적용하실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와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에서 이어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이 값없는 선물이라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이것은 바울이 살던 시대에도 나온 질문입니다. 성경의 답은 구원이 선물이기에 삶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은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말하고, 디도서 3:5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2:12-13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하면서 그 이유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밝힙니다. 받은 사랑이 크면 그 사랑을 닮고 싶어집니다. 값없는 용서를 변명으로 삼으려는 마음이 든다면, 그 선물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보기
구원은 어떤 조건을 채워야 입장할 수 있는 클럽이 아니라, 죽음과 죄책에 묶인 사람에게 오시어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시는 구주의 손길입니다. 아직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아도, 그 손을 잡는 데 완벽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구원을 죽은 뒤의 문제로만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까? 지금 내 삶에서 건져지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면, 나는 그분을 얼마나 알고 싶어 합니까?
더 읽으려면 은혜란 무엇인가?와 왜 십자가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에베소서 2장 1-10절을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관련 질문
- 은혜란 무엇인가?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와 선물이며, 그 선물은 우리를 용서하고 또 변화시킵니다. 성경은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은혜는 죄를 가볍게 만드는 면허가 아니라 새 삶을 가르치고 이루는 힘입니다.
- 예수는 왜 죽어야 했는가?교회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그 죽음은 하나님이 죄를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표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는 표입니다. 십자가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에는 교회 안에 여러 그림이 있지만, 그 중심에 사랑과 대속이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한 목소리입니다.
- 구원은 잃을 수 있는가?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이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달려 있다는 점, 그리고 성경의 경고가 실제라는 점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믿는 사람이 끝내 떨어져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혁파, 웨슬리·알미니안, 가톨릭과 정교회가 서로 다르게 답해 왔습니다. 이 글은 각 입장을 가장 좋은 모습으로 소개하고, 불안한 사람에게 성경이 주는 위로를 함께 살핍니다.
- 믿음이란 무엇인가?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눈을 감고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 아니라, 신실하신 분을 신뢰하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고, 선한 삶으로 열매를 맺으며, 의심 속에서도 도움을 구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향하는 분, 곧 그리스도께 구원이 있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관련 주제
출처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