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 몇 가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그분을 거스르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마음의 상태이며, 그 뿌리는 마음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문제 아래 있어 죄는 우리를 얽매고 하나님과 이웃과 우리 자신을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죄의 삯 곁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함께 놓습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죄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일 3:4
죄는 하나님의 기준을 어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죄는 사람 사이의 잘못에 그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대한 잘못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치고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시 51:4). 죄는 규칙 위반이기 이전에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이사야도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라고 말합니다 (사 59:2).
이 이야기는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됩니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든 뒤 이렇게 유혹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
죄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선악의 기준을 내가 정하는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려는 마음입니다. 그 결과가 한 사람의 일로 끝나지 않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죄는 행동보다 깊은 곳에 뿌리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막 7:21-22
예레미야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렘 17:9). 그래서 죄는 결국 하나님 없이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삶의 방향이며, 거기에서 여러 잘못된 행동이 나옵니다.
성경은 이 문제를 어느 한 사람이나 민족의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죄는 또 우리를 얽어맵니다. 예수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8:34). 한 번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과 욕망이 우리를 끌고 갑니다.
죄의 결과는 무겁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서 끝내지 않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삯은 일한 사람이 받는 것이고 선물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진단하는 목적이 우리를 정죄하는 데 있지 않고 치료자께로 이끄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죄를 가볍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죄의 종 됨이 얼마나 비참한지 이렇게 말합니다.
죄의 종은 어디로 도망합니까. 어디를 가든 그것을 지니고 갑니다. 그의 죄는 그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쾌락은 지나가나 죄는 지나가지 않으니, 그 즐거움은 가고 그 가시는 뒤에 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는 같은 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일부러 먼저 두렵게 하시고 그다음에 소망을 주신다고 풀이합니다. "우리가 죄를 사랑하지 않도록 두렵게 하시고, 우리가 죄 사함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도록 소망을 주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엔키리디온』에서 악을 선의 결핍으로 보았습니다. 악은 따로 창조된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게 지으신 것이 손상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엔키리디온 11. 이 생각은 죄가 사람 안의 선한 모습을 완전히 지워 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죄가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퍼졌는지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 이해의 차이가 있습니다. 서방 교회, 특히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의 전통은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죄책과 부패를 함께 전했다고 가르쳐 "원죄"라고 부릅니다. 개혁 교회는 대체로 죄책의 전가까지 말하지만, 가톨릭은 원죄를 후손이 지는 죄책이라기보다 은혜를 잃은 상태와 죄로 기우는 성향으로 설명합니다. 동방 정교회는 아담에게서 죽음과 부패가 이어졌다고 보면서 죄책이 상속된다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같은 것을 고백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고, 스스로는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매튜 헨리는 죄의 일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 그리고 에베소서 2장을 풀면서 죄가 얼마나 깊은 문제인지 말합니다. "죄는 영혼의 죽음입니다" 매튜 헨리. 그러나 같은 곳에서 그는 곧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풍성한 긍휼을 말합니다. 죄를 말하는 것은 구원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죄를 가리키는 가장 흔한 말은 입니다. 동사 는 본래 과녁을 맞히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였고, 구약의 도 같은 그림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이 정하신 목표,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삶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로마서 3:23의 "이르지 못하더니"도 같은 방향의 표현입니다.
요한일서 3:4의 "불법"은 이고, 말 그대로 율법이 없는 상태, 곧 법을 무시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죄가 빗나감이면서 동시에 반역임을 보여 줍니다. 구약에는 또 "반역, 범죄"를 뜻하는 가 있습니다. 성경은 죄를 하나의 그림으로 말하지 않고, 목표에서 빗나감과 법을 어김과 반역이라는 여러 그림으로 말합니다.
흔한 반론과 답
"죄는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이 아닙니까?" 오늘 많은 사람이 죄라는 말에서 죄책감과 정죄를 떠올리고, 그런 말은 사람을 억누르는 데 쓰였다고 느낍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라는 말이 사라져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가 잘못했고 세상이 어긋나 있다고 느끼고, 다른 말로 그것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이 어긋남을 가장 정직하게 직시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죄를 부정하면 용서도 필요 없어지지만, 그와 함께 우리의 선택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도 약해집니다.
"저는 선한 사람인데요." 이것은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하고 돕고 희생합니다. 성경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하므로 사람의 선함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우리는 대개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문제 삼는 기준은 이웃의 평균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마음의 분노까지 이어서 말씀하셨고 (마 5:21-22), 야고보는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합니다 (약 4:17). 정직하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하고 싶은 선과 실제로 하는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울도 같은 경험을 이렇게 씁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19). 이것은 우리가 나쁜 사람이라는 선언이 아니라, 선한 사람에게도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입니다.
"그렇게 태어났다면 사람이 어떻게 책임질 수 있습니까?" 아담의 일로 후손이 죄 아래 있다는 가르침은 불공평하게 들릴 수 있고, 이 반론은 진지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교회는 이것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서로 다릅니다. 죄책이 전가된다고 보는 쪽도, 부패와 죽음이 이어진다고 보는 쪽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에서도 성경은 우리의 책임을 없애지 않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라고 쓰며 (롬 5:12),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선택으로도 죄를 짓습니다. 또 같은 로마서 5장이 아담 안에서의 죄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를 더 크게 말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롬 5:20). 우리를 얽어맨 것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다면, 우리를 푸는 것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더 생각해 보기
죄를 정직하게 보는 것은 자기를 학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8-9). 죄를 인정하는 일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 끝에 용서가 있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되는 일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삶에서 어디까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살고 있습니까? 반복해서 나를 끌고 가는 습관이나 욕망은 무엇입니까? 용서받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 무엇이 달라질 수 있습니까?
더 읽으려면 은혜란 무엇인가?, 예수는 왜 죽어야 했는가?, 회개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관련 질문
- 은혜란 무엇인가?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와 선물이며, 그 선물은 우리를 용서하고 또 변화시킵니다. 성경은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은혜는 죄를 가볍게 만드는 면허가 아니라 새 삶을 가르치고 이루는 힘입니다.
- 예수는 왜 죽어야 했는가?교회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그 죽음은 하나님이 죄를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표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는 표입니다. 십자가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에는 교회 안에 여러 그림이 있지만, 그 중심에 사랑과 대속이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한 목소리입니다.
- 회개란 무엇인가?회개는 죄를 두고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후회나 죄책감에 빠져 있는 것과 다르고,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집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성경은 회개를 사람이 해야 할 응답이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말하며, 한 사람이 돌아올 때 하늘이 기뻐한다고 가르칩니다.
- 인간이란 무엇인가?성경은 사람을 흙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같은 존엄을 가지지만, 그 형상은 죄로 훼손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집니다. 사람이 동물이나 물질일 뿐이라는 반론에 대해 교회는 사람의 몸과 흙의 뿌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관련 주제
출처
- 아우구스티누스, 신앙 핸드북(엔키리디온) 11 — 악은 선의 결핍이며, 하나님은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신다.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