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인간이란 무엇인가?

짧은 답

성경은 사람을 흙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같은 존엄을 가지지만, 그 형상은 죄로 훼손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집니다. 사람이 동물이나 물질일 뿐이라는 반론에 대해 교회는 사람의 몸과 흙의 뿌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사람을 두 방향에서 동시에 바라봅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흙에 지나지 않는 연약한 존재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을 닮은 존귀한 존재라고 합니다. 이 두 말은 서로 부딪치지 않고, 함께 있어야 사람이 바르게 보입니다.

먼저 사람의 시작입니다. 창세기는 사람의 몸이 땅에서 왔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사람은 흙으로 지어졌고, 하나님의 숨결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몸을 가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지음 받은 모습의 일부입니다. 한편 창세기 1장은 사람의 높은 자리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이 말씀 앞에서 시편 기자는 놀라서 묻습니다. 달과 별을 바라보며 사람이 얼마나 작은지 느끼면서도, 하나님이 그를 돌보신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 8:4-5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사실에서 사람의 존엄이 나옵니다. 노아의 홍수 뒤에 하나님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을 금하시며 그 이유를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6)라고 하십니다. 야고보도 같은 이유로 사람을 저주하는 일을 꾸짖습니다. 우리가 혀로 주 아버지를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기 때문입니다 (약 3:9). 이 존엄은 능력이나 쓸모, 신분에서 오지 않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같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이 교회의 삶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있는 그대로 온전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지만 죄로 그 모습이 일그러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그러나 이 진단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그러진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그리고 새로워집니다. 신약은 참된 형상이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골 3:10). 바울은 이 변화를 이렇게 그립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교회의 증언

교회는 사람 안에서 이 높음과 낮음을 함께 보아 왔습니다. 매튜 헨리는 창세기 1장을 풀면서 사람이 짐승과 같은 날 같은 흙으로 지어졌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합니다.

우리가 몸과 몸의 욕망을 만족시킴으로써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되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랍니다!

매튜 헨리

같은 곳에서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것은 사람의 영혼입니다"라고 쓰고 매튜 헨리, 이 형상이 죄로 얼마나 훼손되었는지를 탄식하며 주께서 그 형상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시편 8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어찌 이렇게 미천한 피조물이건만 이처럼 존귀하게 되었습니까! 어찌 이렇게 죄 많은 피조물이건만 이처럼 은총을 입었습니까!

매튜 헨리

이웃을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에 대해서는 위(僞)크리소스토무스가 이렇게 풀이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이 사랑받으시니, 임금이 그의 동상에서 존경받는 것과 같습니다" 위(僞)크리소스토무스.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사람을 지으신 분을 존중하는 일이 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는 교회 안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정확히 무엇이냐는 점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성, 도덕적 판단, 자유와 같은 사람의 능력에서 형상을 찾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과 이웃 앞에 서는 관계 자체가 형상이라고 보고, 또 어떤 이들은 땅을 다스리는 소명에서 형상을 봅니다. 많은 신학자는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로 한정하지 않고 몸과 영혼을 아우르는 사람 전체가 형상을 담은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영혼과 몸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죽음과 부활 사이에 사람이 어떻게 있는지에 대해서도 신학자들의 설명이 다릅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고, 하나님 앞에서 타락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원어로 보기

창세기 1:26의 "형상"은 히브리어 입니다. 이 말은 흔히 신상이나 조각상처럼 눈에 보이는 상(像)을 가리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이 자기가 다스리는 땅 곳곳에 자기 형상을 세워 통치를 알렸다고 흔히 설명합니다. 창세기는 이 낱말을 가져와 사람이 곧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그분을 나타내는 존재라고 선언합니다. 신상은 신의 이름을 빌린 돌덩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살아 숨 쉬는 사람입니다. 신약에서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이며, 골로새서 1:15에서 그리스도에게 쓰입니다. 곧 사람이 지닌 형상의 원형이 그리스도입니다.

또 하나는 창세기 2:7의 "생령"에 쓰인 입니다. 이 말은 몸과 떨어진 영혼만을 가리키지 않고, 숨 쉬며 살아 있는 존재 전체를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몸이라는 껍질 속에 갇힌 영혼으로 보지 않고, 몸과 영이 함께 있는 하나의 사람으로 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소망도 영혼만의 불멸이 아니라 몸의 부활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사람은 동물, 혹은 물질일 뿐이다." 이 반론에는 무시할 수 없는 근거가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다른 생물과 많은 점에서 같고, 생각과 감정은 뇌의 상태와 깊이 이어져 있습니다. 약이나 상처가 성격을 바꾸기도 합니다. 신앙은 이것을 부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창세기도 사람이 흙에서 왔다고 하고, 매튜 헨리도 사람이 짐승과 같은 땅에 산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곧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을지, 진화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도 서로 다른 견해가 있고, 이 글은 그 가운데 어느 쪽도 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람의 존엄은 생물학적 계통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형상은 사람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관계 맺도록 부름 받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이 물질이라면 모든 사람의 동등한 가치, 곧 약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도 침해될 수 없다는 생각을 무엇이 뒷받침하느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사회가 합의한 약속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가치가 우리가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이 차이는 증명보다는 어느 쪽이 사람 삶의 경험에 더 맞는지 견주어 볼 문제입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죄인이라 부르며 깎아내린다." 이 반론에는 오해도 있지만 정직한 불편함도 있습니다. 어떤 신앙은 정말 사람에게 수치심만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사람을 죄인이라 부르는 것은 사람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높은 부르심에서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는 말은 본래 높은 곳에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높음과 낮음을 함께 말하고, 그 사이에서 사람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로마서 5:8이 말하듯 하나님은 죄인일 때에 사랑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서 교회는 왜 사람을 차별하고 노예로 부렸는가?" 이것은 아프지만 정당한 물음입니다. 교회는 이 가르침을 어겼고, 어떤 때에는 성경을 끌어다 차별을 변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잘못은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같은 본문, 곧 창세기 1:27과 갈라디아서 3:28이 차별을 비판하는 근거로도 쓰였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가르침이 틀렸다는 것과 가르침을 어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사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이웃을 어떻게 대할지를 바꿉니다. 내가 흙임을 알면 교만이 줄고, 내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알면 절망이 줄어듭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람의 가치를 능력과 쓸모로 재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내 안에 일그러진 형상이 새로워진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이어서 읽으려면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와 죄란 무엇인가?, 예수는 누구인가?를 보십시오. 시편 8편과 139편을 천천히 읽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