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성경은 믿을 만한가?

짧은 답

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책이라고 소개합니다. 필사본의 수와 이른 시기, 사해 사본 같은 발견은 오늘의 성경이 기록 당시의 본문을 매우 가깝게 전한다고 믿을 근거를 줍니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신뢰할 이유이며, 정직한 의문은 그 신뢰를 시험하는 일이 됩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자기 자신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이 책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책이 실제 사건을 본 사람들의 증언에 기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씁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베드로는 이것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

흔히 이것을 하나님이 받아쓰게 하셨다는 뜻으로 오해하지만, 성경은 사람들이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들은 각자의 언어와 경험과 성격을 가지고 썼고, 그 모든 과정에서 성령이 이끄셨다는 것이 교회의 이해입니다.

다음으로 증언의 문제입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쓰며 자기 방법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눅 1:3-4

누가는 앞서 이 이야기가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라고 밝힙니다 (눅 1:2). 요한의 편지도 같은 태도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1

베드로는 더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는 것입니다 (벧후 1:16).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성경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구약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논쟁 가운데서도 예수께서는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라고 하시며 성경의 말씀에 호소하셨습니다 (요 10:35).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신뢰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이 성경을 그렇게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책으로 받았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성령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니케아 신경. 신약의 정경은 하루아침에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신약 27권을 정확히 열거한 가장 이른 목록은 아타나시우스의 367년 부활절 서신에 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제39 부활절 서신. 이 과정은 성경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누가복음 서문을 풀면서 누가의 태도를 이렇게 봅니다. 복음서 기자는 "자기 한 사람의 증언에 만족하기는커녕 모든 것을 사도들에게로 돌려 그들에게서 자기 말에 대한 확증을 구하였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곧 복음서는 개인의 상상이 아니라 증인들의 전승 위에 서 있다는 이해입니다. 에우세비우스도 누가가 글을 쓴 이유가, 다른 이들이 경솔하게 기록한 일들에 관해 자기가 더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에우세비우스.

매튜 헨리는 디모데후서 3:1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영생에 이르는 확실한 안내자입니다" 매튜 헨리. 그는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목적에 유익하다고 덧붙이며, 두 성경의 중심 주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정직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에는 교회가 일치하지만, 그 영감을 어떻게 설명하고 ‘오류가 없다’는 말을 어떤 범위로 이해할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역사와 과학의 세부까지 포함해 모든 면에서 무오하다고 이해하고, 어떤 이들은 구원과 신앙과 삶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오류가 없다고 이해합니다.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을지도 이 차이와 이어집니다. 이 글은 어느 쪽을 고르지 않습니다. 모두 성경이 믿고 따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원어로 보기

디모데후서 3:16의 ‘감동으로 된’은 헬라어 입니다. ‘하나님’과 ‘숨’을 합친 말로,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성경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숨이 닿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 숨은 사람의 일을 지우지 않고, 사람의 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것이라고 교회는 이해해 왔습니다.

또 하나는 누가복음 1:4의 ‘확실함’으로 번역된 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안전과 확실성을 뜻합니다. 누가는 데오빌로가 들은 것을 믿어도 되는지 알게 하려고 글을 썼습니다. 성경은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요구하기보다, 살펴본 위에 확신하라고 청합니다.

흔한 반론과 답

"너무 여러 번 필사되어 원래 내용은 이미 변했을 것이다." 이 의문은 정당합니다. 원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사본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으며, 어떤 구절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의심받습니다. 마가복음 16:9-20과 요한복음 7:53-8:11은 가장 이른 사본들에 없어서 많은 성경 번역본이 따로 표시합니다. 이것은 숨길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정은 이렇습니다. 신약은 헬라어 사본만 5천 점이 넘게 남아 있어서, 고대의 다른 어떤 문헌보다 비교할 자료가 풍부합니다. 사본이 많다는 것은 차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서로 대조해 원래 본문을 되짚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차이의 대부분이 철자나 어순 같은 사소한 것이라고 보며, 신앙의 핵심 가르침이 어느 하나의 불확실한 읽기에만 걸려 있지는 않다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구약에서는 사해 사본이 큰 도움을 줍니다. 기원전 2세기경의 이사야서 전체 사본이 천 년 뒤의 마소라 본문과 거의 같습니다 사해 사본, 이사야 사본. 다만 ‘거의’라는 말은 정확해야 합니다. 작은 차이가 있고, 본문 비평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전달이 정확했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감동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읽는 본문이 처음 기록된 본문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 줄 뿐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한참 뒤에 쓰인 글이 아닌가?" 이 비판에도 맞는 점이 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대략 30-70년쯤 뒤에 기록되었다고 보는 학자가 많고, 정확한 연대는 논쟁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구전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은 50년대의 것으로 복음서보다 이르고, 고린도전서 15:3-5는 많은 학자가 십자가 사건 직후에 형성된 신앙고백으로 봅니다 (고전 15:3-5). 또 목격자 수백 명이 아직 살아 있던 때에 이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고전 15:6). 고대의 역사서는 대개 사건 뒤 몇십 년 만에 쓰였고, 이 정도의 간격은 고대 문헌으로서는 짧은 편입니다. 고고학은 신앙을 증명해 주지는 못하지만, 복음서가 그리는 배경이 실제 세계와 맞는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가이사랴에서 발견된 비문은 빌라도가 유대 총독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 고고학에서도 모든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며, 구약의 어떤 사건은 연대와 해석이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니 순환 논증이 아닌가?" 만일 ‘성경이 영감되었다’는 한 구절만으로 성경의 권위를 세우려 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성경을 하나의 역사 문헌으로 살펴 그 증언이 믿을 만한지 봅니다. 다음으로 그 증언이 전하는 예수의 부활을 평가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셨다면, 성경에 대한 믿음은 그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이것을 증명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신뢰는 증거 위에서 이루어지지만 마지막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읽는 사람 안에서 이 말씀이 참됨을 확증하신다고도 말합니다. 이 점은 신앙의 영역이고, 읽는 이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서로 어긋나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반론은 성경에는 모순이 있는가?에서 따로 다룹니다.

더 생각해 보기

성경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 성경을 직접 읽는 데서 가장 잘 풀립니다. 요한은 자기 복음서를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요 20:31). 성경은 자기를 숭배하라고 쓰이지 않았고, 그리스도께 이끌려고 쓰였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어 보고 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들은 이야기로만 판단하고 있습니까? 어떤 증거가 있으면 이 책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읽을 수 있는 한 복음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어떨까요?

더 읽으려면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와 예수는 실존했는가?를 보십시오.

출처

  1.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2. 아타나시우스, 제39 부활절 서신 367 — 오늘의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열거한 가장 이른 목록.
  3. 쿰란 문서, 사해 사본 1QIsa^a — 기원전 2세기경의 이사야서 전체 사본. 천 년 뒤의 마소라 본문과 거의 같다.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