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때 가장 잘 읽힙니다. 문맥과 문학 양식을 살피고, 묵상하고 순종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교회와 함께 읽으십시오. 해석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읽기를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더 겸손하고 성실하게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성경의 답
성경을 어떻게 읽을지는 성경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씁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
성경은 사람의 글이면서 하나님이 숨결을 불어넣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일은 지식을 얻는 일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목적도 분명합니다. 정보를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읽는 사람이 온전해지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전체를 꿰는 중심은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보여 주십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7
예수께서는 논쟁하던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 구약은 약속과 기다림이고, 신약은 그 약속이 이루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한 구절을 읽을 때에도 "이 말씀은 전체 이야기에서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께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묻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흩어진 구절이 하나의 이야기로 모입니다.
성경은 한 권이지만 서른 권 넘는 다양한 글이 모인 책이기도 합니다. 시와 역사 이야기, 율법과 잠언, 예언과 복음서와 편지가 한데 있습니다. 시는 시로, 이야기는 이야기로, 편지는 편지로 읽어야 합니다. 또 누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말하는지, 앞뒤 문단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피는 일이 먼저입니다. 문맥을 떼어 낸 한 구절은 쉽게 엉뚱한 뜻이 됩니다. 그리고 분명한 말씀으로 어두운 말씀을 풀고,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오랜 원칙입니다.
읽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을 이렇게 그립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2). 성경은 서둘러 해치우는 책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책입니다. 그리고 묵상은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2
야고보는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을 거울을 보고 가서 제 얼굴을 곧 잊어버리는 사람에 비유합니다 (약 1:23-25). 성경은 읽은 만큼 아는 책이기도 하지만, 순종한 만큼 깊어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기도하며 읽는 책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구합니다 (시 119:18). 누가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눅 24:45). 이해는 우리의 노력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열리는 선물입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성경을 홀로 읽지 않고 함께 읽어 왔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사야서를 읽다가 빌립이 "읽는 것을 깨닫느뇨" 하고 묻자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라고 답했습니다 (행 8:30-31).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풀어 주는 사람도 교회 안에 세우십니다. 이 점에서는 교회 전통이 대체로 일치합니다. 다만 성경과 교회 전통의 관계는 갈립니다. 개신교는 성경이 최종 권위이고 전통은 성경 아래에서 성경을 돕는다고 봅니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성경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 안에서 읽히고 해석된다고 봅니다. 두 쪽 모두 개인의 취향대로 읽는 것을 경계하고, 신경이 고백하는 큰 줄기 안에서 읽어야 한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베다는 누가복음 24장을 풀며 날카롭게 묻습니다.
이 성경들이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인지 찾지도 않고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그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 어찌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하겠습니까?
베다
성경을 읽는 일이 그리스도를 찾는 일임을 일깨우는 말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읽은 것을 곧 실천하라고 권합니다. "들은 것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지금 깨달을 수 있는 것을 행위로 이루도록 서두르십시오" 그레고리우스.
매튜 헨리도 야고보서 1장을 풀며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 그는 시편 119편을 풀면서,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의 기이한 일들을 보려는 사람은 그분의 영의 빛으로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매튜 헨리.
원어로 보기
바울이 성경을 가리켜 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은 헬라어로 입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숨결로 된"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고백이 이 한 낱말에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이 성경의 저자를 단순한 필기자로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 저자의 성격과 문체가 살아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이 교회의 오랜 이해입니다. 영감의 방식에 대해서는 신학자마다 설명이 조금씩 다릅니다.
시편 1:2의 "묵상하다"는 입니다. 기본 뜻은 "중얼거리다"입니다. 옛 사람들은 말씀을 소리 내어 읽고 낮게 되뇌며 마음에 새겼습니다. 묵상은 머릿속에서만 하는 일이 아니라 입과 마음으로 말씀을 되풀이하며 곱씹는 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5:39의 "상고하다"는 입니다. 무엇을 찾아 구석구석 살핀다는 뜻으로, 예수께서는 성경을 부지런히 살피던 사람들에게 그 모든 살핌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나"라고 하십니다. 이 동사를 "너희가 상고한다"는 서술로 읽을지 "상고하라"는 명령으로 읽을지는 해석이 갈리지만, 어느 쪽이든 성경을 부지런히 살피되 그것이 증거하는 분께로 가야 한다는 뜻은 같습니다.
흔한 반론과 답
"같은 성경을 두고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이 반론은 가볍지 않습니다. 교회는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 있고, 성경이 전쟁이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 일도 있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견이 있다고 해서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역사 문서 중에도 해석이 갈리는 것은 많지만, 그렇다고 모든 해석이 똑같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이용한 잘못된 주장은 대개 문맥을 무시하고 한 구절만 떼어 쓰거나, 성경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놓친 데서 생겼습니다. 또 교회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 같은 중심 가르침에서는 오랫동안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세례나 예정이나 종말 같은 문제에서 견해가 갈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읽기를 멈출 이유가 아니라 서로의 해석을 존중하며 더 정직하게 읽을 이유입니다.
"성경은 너무 오래되고 어려운 책이어서 보통 사람이 읽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도 바울의 편지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라고 인정합니다 (벧후 3:16). 그러니 어려움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보통 사람에게 주어진 책이고,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칭찬받습니다 (행 17:11). 처음 읽는 사람은 복음서, 그중에서도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부터 시작하십시오. 이 앱에서 구절을 열면 교부들과 매튜 헨리의 주석을 볼 수 있고, 헬라어와 히브리어 낱말의 뜻도 찾아볼 수 있어 어려운 대목을 읽을 때 도움이 됩니다. 이해가 안 되는 곳은 잠시 표시해 두고 읽어 나가면 됩니다. 다른 곳에서 해답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성경을 골라서 따르지 않습니까?" 반론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오늘 우리가 문자 그대로 지키지 않는 규정이 있고, 이것을 어떻게 구분할지는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논의가 이어집니다. 다만 교회는 성경을 아무 곳이나 골라 읽지 않고, 구절의 양식을 살핍니다. 시는 시로, 역사는 이야기로, 율법은 율법으로, 편지는 편지로 읽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전체 이야기 속에서 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 쓰인 것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눅 24:44). 어느 부분을 오늘 어떻게 적용할지는 성실하게 따져 볼 문제이고, 그 따짐 자체가 성경을 진지하게 읽는 일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성경을 읽는 일은 시험 공부가 아니라 만남입니다.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목적이므로, 많이 읽지 못한 날에도 한 구절 앞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대목을 정해, 읽고, 천천히 되새기고, 기도하고,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정해 보십시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성경에서 찾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읽고 있는 대목은 전체 이야기에서 어디에 있습니까? 이미 알고 있으면서 아직 행하지 않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더 읽으려면 성경은 믿을 만한가?,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성경에는 모순이 있는가?를 보십시오.
관련 질문
- 성경은 믿을 만한가?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책이라고 소개합니다. 필사본의 수와 이른 시기, 사해 사본 같은 발견은 오늘의 성경이 기록 당시의 본문을 매우 가깝게 전한다고 믿을 근거를 줍니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신뢰할 이유이며, 정직한 의문은 그 신뢰를 시험하는 일이 됩니다.
-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성경은 약 1,500년에 걸쳐 여러 저자가 쓴 책들의 모음입니다. 교회는 이 책들을 회의에서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히고 있던 책들을 알아보고 목록으로 확인했다고 고백합니다. 구약과 외경의 범위에 대해서는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의 입장이 다릅니다.
- 성경에는 모순이 있는가?성경에는 서로 달라 보이는 대목이 분명히 있습니다. 교회는 이를 증언자들의 시각 차이, 요약과 어림수, 필사 과정의 변이, 글의 종류로 이해해 왔고, 이런 설명이 모든 경우를 풀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인정해 왔습니다. 성경의 신뢰는 모든 세부가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데가 아니라 증언이 가리키는 사건과 그 중심 메시지에 있다고 그리스도인들은 믿습니다.
-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오늘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중심으로, 창조와 성령과 교회의 분별 속에서 들립니다. 성령이 지금도 개인을 인도하시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다르지만, 모두 성경이 모든 말을 시험하는 기준이라는 데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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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