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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실존 인물인가?

짧은 답

고대사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역사가는 예수가 실제로 살았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고 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학자들도 대체로 받아들이는 결론입니다. 가장 이른 신약의 증언과 로마·유대 쪽 기록이 서로 독립적으로 같은 사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답

예수가 실제로 살았는가 하는 문제는 신앙의 질문이기 전에 역사의 질문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질문에는 역사의 방법으로 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방법이란 가장 이른 증거가 무엇이며, 누가 언제 어떤 사정에서 썼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가장 이른 글은 복음서가 아니라 바울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씁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전 15:3-5

많은 학자는 이 구절이 바울이 지은 글이 아니라 그가 전해 받은 신앙고백이라고 봅니다. 바울은 십자가 사건 몇 해 뒤에 이것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점에서 갈라디아서가 눈여겨볼 만합니다. 바울은 회심 뒤 삼 년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베드로와 보름을 지냈다고 쓰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갈 1:19

바울은 '주의 형제'라 불리는 야고보를 직접 만난 사람입니다. 이 호칭을 신자들 사이의 영적 형제라는 뜻으로 읽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문맥상 예수의 가족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대부분의 학자는 생각합니다. 어느 쪽이든 바울이 예수와 가까운 사람들을 실제로 알았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누가는 자기 글의 성격을 처음부터 밝힙니다. 그는 이야기를 지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쓴다고 하고, 자신도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뒤에 차례대로 쓴다고 말합니다 (눅 1:2-3). 이어서 그는 사건을 역사 속에 못 박습니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눅 3:1-2

왕과 총독과 대제사장의 이름과 때를 줄줄이 적는 일은, 나중에 확인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자신감을 보여 줍니다. 빌라도는 성경 밖에서도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1961년 가이사랴에서는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새겨진 돌이 발견되었습니다. 역사가는 이런 글이 누구에게나 점검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누가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물론 복음서는 신앙의 증언이며 역사가는 그 점을 감안해 읽습니다. 그러나 증언이 신앙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곧 거짓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가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살고 죽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신경은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신경. 믿음의 신조에 로마 총독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를 영원한 진리의 상징이 아니라, 정해진 때에 정해진 총독 아래서 일어난 사건의 주인공으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누가가 자기 한 사람의 증언에 기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복음서 기자는 자기 한 사람의 증언에 만족하기는커녕 모든 것을 사도들에게로 돌려 그들에게서 자기 말에 대한 확증을 구하였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매튜 헨리도 누가의 의도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누가는 "확실히 믿어지고 있고 또 믿어져야 하는 일들을 기록하려 합니다" 매튜 헨리.

교회 밖의 기록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일부러 모은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을 달가워하지 않던 사람들의 글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116년경에 네로가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린 일을 기록하면서, 이 이름의 기원이 디베료 황제 때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된 '그리스도'에 있다고 적습니다 타키투스, 연대기 15.44. 그는 이 운동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93년경에 예수를 다룬 대목을 썼습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8.63–64. 이 대목에는 후대 그리스도인이 덧붙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같은 책의 다른 곳에서 요세푸스는 대제사장이 '그리스도라 불린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했다고 짧게 언급하는데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20.200, 이 구절은 대부분의 학자가 진본으로 봅니다. 또 112년경 소(小) 플리니우스는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송한다고 보고합니다 소 플리니우스, 서간집 10.96.

원어로 보기

누가가 "자세히"라고 쓴 말은 입니다. '정확하게', '꼼꼼하게'라는 뜻으로, 대충 모은 소문이 아니라 따져 본 조사를 가리킵니다. 누가는 이 말로 자기 글이 되는대로 쓴 이야기가 아니라 조사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목격자"로 옮긴 말은 로, 문자 그대로 '자기 눈으로 본 사람'입니다. 복음서의 이야기가 소문이 아니라 직접 본 사람들의 증언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같은 뿌리의 말인 는 '증인'을 뜻하며, 뒷날 증언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을 가리키는 '순교자'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흔한 반론과 답

"예수는 실존하지 않았으며, 후대가 만든 신화이다." 이른바 '예수 신화설'은 인터넷에서 자주 만나는 주장이며, 진지하게 제기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서는 사건 몇십 년 뒤에 신자들이 썼고, 비그리스도교 기록은 몇 줄에 그치며 대부분 이른 시기의 것이 아닙니다. 바울도 예수의 지상 생애를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신들의 이야기는 고대 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으니 예수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적은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대 인물에 대한 자료는 원래 적고, 예수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대다수 역사가는 이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첫째, 앞서 본 대로 바울은 예수의 동생을 만났다고 쓰며, 이는 신화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예수 이야기는 유대 땅의 어느 특정한 시기에 놓여 있고, 이른 시기의 유대 문헌에서는 십자가에 처형된 메시야라는 개념이 오히려 걸림돌이었습니다. 신화를 만들려는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셋째, 죽었다 사는 신들의 이야기는 예수 이야기와 구조와 배경이 많이 다르며, 많은 학자는 유사성을 말하는 주장이 대개 예수 이후의 자료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넷째, 신화가 자라려면 보통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선포는 사건 직후의 고백으로 이미 남아 있습니다. 예수가 살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학자들도 거의 모두 받아들이는 결론입니다. 다만 이는 부활이 사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별개의 질문이며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에서 다룹니다.

"교회 밖 기록은 예수 사후 수십 년 뒤의 것이고 신자의 전언에 의존했을 뿐이다." 이 반론도 일리가 있습니다. 타키투스는 자기가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라 로마에 알려진 이야기를 적었을 수 있고, 요세푸스의 대목은 손질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록들만으로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이 증명하는 것은 더 소박한 사실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고, 빌라도 치하에서 처형되었으며, 그 뒤 그를 따르는 무리가 로마 제국 곳곳으로 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적대자들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그것을 전제로 말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가 없었다면 그것을 부인하는 쪽이 가장 쉬운 반박이었을 것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예수의 실존을 인정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역사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질문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한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그분이 누구인가를 말해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신앙이 구름 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 위의 사건에 서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질문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어떤 사정에서 들었습니까? 역사의 증거를 따져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가 실제로 살았다면 그분이 누구인지 묻는 일은 얼마나 중요하게 느껴집니까?

더 읽으려면 예수는 누구인가?와 성경은 믿을 만한가?를 보십시오. 누가복음 1장 1-4절을 천천히 읽어 보는 것도 좋은 출발입니다.

출처

  1.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2. 타키투스, 연대기 15.44 — 116년경. 그리스도가 빌라도 치하에서 처형되었다고 기록한다.
  3.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8.63–64 — 93년경. 예수에 관한 기록(후대 기독교인의 첨가가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
  4.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20.200 — '그리스도라 불린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처형.
  5. 소(小) 플리니우스, 서간집 10.96 — 112년경.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송한다고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고한다.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