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하나님인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시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이것은 후대에 덧붙인 교리가 아니라 신약의 증언을 따라 니케아 공의회가 정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아들은 아버지와 구별되면서도 같은 본질을 가지신다는 것이 그 뜻입니다.
성경의 답
신약은 예수를 하나님이시라고 여러 방식으로 증언합니다. 가장 분명한 것은 요한복음의 첫머리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함께 계셨다'는 말은 아버지와 구별된다는 뜻이고,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아버지와 같은 신성을 가지신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이어서 말합니다 (요 1:14). 18절에서는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합니다 (요 1:18). 다만 이 구절은 사본에 따라 '독생하신 하나님'과 '독생자'가 갈리므로, 학자들이 본문을 두고 토론해 온 구절임을 밝혀 둡니다. 위의 1:1과 아래의 20:28만으로도 요한복음의 뜻은 충분히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과 행동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 8:58
'나는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기 이름을 밝히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출 3:14). 듣는 사람들은 그 뜻을 알아들었고 돌을 들었습니다. 또 다른 때에 예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시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 10:33
예수께서는 죄도 사하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자 서기관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막 2:5-7). 그들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죄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지은 것이므로 그것을 사하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또 배 안의 제자들은 그분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합니다 (마 14:33). 유대인에게 경배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었는데도 예수께서는 이를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들의 편지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 2:9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히 1:8
골로새서 1:15-20은 만물이 그분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히브리서 1:3은 그분이 "그 본체의 형상"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합니다. 디도서 2:13은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9:5도 같은 뜻으로 읽는 번역이 많으나 이 구절은 문장을 어디서 끊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그리고 복음서 끝에서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
예수께서는 이 고백을 고치지 않고 받으셨습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가 이 고백을 신조로 정리한 것은 4세기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는 아들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지어진 가장 높은 존재이지만 영원하지는 않으며 아버지와 같은 본질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가르침은 많은 신자에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나뉠 수 없다는 믿음을 지키려는 진지한 동기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타나시우스가 이 신앙을 일생 동안 변호했습니다. 이 신경은 아들을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 곧 '지음을 받지 않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이라고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의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피조물이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만이 하나님과 우리를 다시 이어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부들은 성경 구절에서 같은 점을 읽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요한복음 8:58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예수께서 '아브라함이 있었다'가 아니라 '있느니라'고 하신 것은 "신성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언제나 현재뿐이며" 출애굽기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피조물이므로 그분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이라 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이 지음을 받기 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매튜 헨리는 요한복음 10:30을 풀이하면서, 그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동등하게 신적 능력과 완전함을 주장하셨음을 증명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원어로 보기
는 '하나님'을 뜻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1에서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다'고 하는데, 두 번째 '하나님'에는 관사가 붙지 않았습니다. 이를 근거로 '하나의 신'이라고 옮기는 번역도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 서술어 명사가 앞에 놓이면 관사가 빠지는 것이 보통이며, 이 경우는 말씀의 성질이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읽는 것이 문법과 문맥에 맞는다고 대부분의 학자는 봅니다. 같은 요한복음은 곧바로 말씀이 만물을 지으셨다고 하며, 지어진 것 가운데 지음을 받지 않은 것은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는 '주'입니다. 일상에서는 존칭으로도 쓰였지만 구약의 헬라어 번역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이 말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예수는 주시다"라고 고백한 것은 큰 무게가 있었습니다. 빌립보서는 하나님이 그분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하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빌 2:9-11).
흔한 반론과 답
"예수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한 적이 없다." 이 지적에는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하신 구절은 복음서에 그대로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분이 신성을 주장하지 않으셨다는 뜻이 되지 못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반응이 그 증거입니다. 그들은 '네가 자칭 하나님이라 한다'며 돌을 들었고, 서기관들은 죄 사함을 참람하다고 보았으며, 대제사장은 재판에서 이 말을 문제 삼았습니다 (막 14:61-62). 그분이 자신을 아브라함보다 앞선 분, 아버지와 하나인 분으로 말씀하셨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오해를 피하려고 그 칭호를 입에 올리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메시야'라는 말조차 정치적 기대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분명히 해석이지만, 증거 쪽의 무게는 가볍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가장 자주 제기되는 성경적 반론이며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 14:28
아리우스파는 이 구절을 들어 아들이 아버지보다 낮다고 보았습니다. 교회는 이 구절을 부정하지 않고 다르게 읽었습니다. 아들은 성육신하여 종의 형체를 취하셨으므로, 사람으로서는 아버지보다 낮으시고 신성으로는 아버지와 같으시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잃지 않은 하나님의 형체가 입으신 종의 형체보다 큽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사람이시므로 가셨고, 하나님이시므로 머무르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 해석은 같은 요한복음의 다른 말씀들과 함께 읽을 때 일관성이 있다고 교회는 봅니다. 물론 이 읽기가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 있는 것은 아니며,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논쟁이 이어져 왔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둘이라는 말인가." 이 물음 앞에서 교회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고백을 조금도 줄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고, 위격으로는 구별됩니다. 이 신비는 삼위일체란 무엇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예수를 하나님이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둘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 하나님의 생명 안에 아들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은 먼저 위로입니다. 하나님이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분으로 오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 고백은 질문을 남깁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의 말씀과 부르심은 어떤 무게를 가지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 고백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성경 구절 때문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하나님일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소식이 사실이라면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게 될까요? 도마처럼 정직한 질문을 가지고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더 읽으려면 예수는 누구인가?와 삼위일체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요한복음 1장과 빌립보서 2장을 나란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관련 질문
- 예수는 누구인가?교회는 예수를 약속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님이시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칼케돈 공의회의 말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한 분입니다. 이것은 그분을 가장 가까이서 따른 사람들이 증언한 것이며, 예수께서 직접 던지신 질문 앞에서 지금도 모든 사람이 답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된 뒤 사흘째에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이것은 수학처럼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증거를 저울질하는 문제입니다. 빈 무덤, 여러 사람이 만난 부활하신 주님, 두려워 숨었던 제자들의 변화는 부활이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한다고 그리스도인들은 믿습니다.
- 예수는 왜 죽어야 했는가?교회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그 죽음은 하나님이 죄를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표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는 표입니다. 십자가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에는 교회 안에 여러 그림이 있지만, 그 중심에 사랑과 대속이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한 목소리입니다.
-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한 분의 은혜에서 온다는 고백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관련 주제
출처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