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왜 다른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인가?

짧은 답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려오신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용서받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부활이라는 역사적 주장이 검증을 받는다는 점이 기독교의 독특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종교 안의 참된 것을 존중하며, 기독교 자신의 실패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의 답

이 질문은 사실 두 가지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왜 그 길을 택해야 하는가입니다. 성경은 먼저 기독교가 무엇을 다르게 말하는지부터 보여 줍니다. 여러 종교는 비슷한 도덕을 가르치고 선하게 살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내놓는 중심 소식은 가르침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첫째는 은혜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와 사람의 본능은 선한 일을 쌓아 하나님 앞에 설 자리를 얻으려 합니다. 성경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구원은 월급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사람이 너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너무 사랑이 크셔서 그렇게 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신이 멀리서 길을 알려 주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사람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셋째는 이 주장이 역사 속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는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구체적인 주장에 모든 것을 겁니다. 바울은 이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4

이 말은 위험한 말입니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이 주장은 읽고, 따져 보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에서 다룹니다.

넷째는 용서와 관계입니다. 예수께서는 규칙을 가르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그분께 나아오라고 초대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립니다 (요 1:12).

그렇다고 다른 종교에 참된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우상이 가득한 도시를 보고도 그들을 조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종교심에서 출발했고, 그들의 시인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행 17:26-27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는" 것 자체를 성경은 존중합니다. 다른 종교의 선함, 지혜, 열심은 그 더듬음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오래전부터 기독교가 다른 길과 다른 점을 "하나님이 내려오셨다"는 데서 찾았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요한복음 1:14을 풀며 이렇게 씁니다. "하나님의 친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신 것은 사람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아우구스티누스는 같은 구절에서 놀라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람에게서 나셨음을 아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

길에 대해서도 비슷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자들도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이시며 진리의 끝이심을 어렴풋이 보았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길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하면서, 인성을 취하신 말씀이 길이 되셨다고 풀이합니다. 그의 권고는 이렇습니다. "잘못된 길을 아무리 힘차게 걷는 것보다 바른 길을 절뚝거리며 걷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사람의 마음이 왜 하나님을 찾는지 고백합니다.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 쉼이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1.

매튜 헨리는 에베소서 2장을 풀면서 은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구원하는 은혜는 하나님의 값없고 받을 자격 없는 선하심과 은총이며, 그분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하십니다" 매튜 헨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첫 질문에서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가 무엇이냐고 묻고, 그것이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데 있다고 답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 기독교의 독특함은 교리 목록에 있기보다, 이렇게 한 인격에 대한 신뢰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은혜를 뜻하는 말은 입니다. 값없이 주어진 호의,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뜻을 담습니다. 이 말이 기독교 전체의 열쇠입니다. 사람이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3:24에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이라고 쓸 때 쓰는 말도 같은 뿌리입니다 (롬 3:24).

요한복음 1:14에서 말씀이 "거하시매"라고 할 때 쓰인 동사는 입니다. 본래 "천막을 치다"라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가운데 장막을 치셨던 하나님이 이제 사람의 몸으로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는 울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의 이웃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 다른 길이다." 이 생각에는 존중할 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이웃을 깎아내리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또 여러 종교가 이웃 사랑, 정직, 절제를 가르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겉보기와 달리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종교들이 실제로 하는 말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격이신지 아닌지, 사람의 문제가 무지인지 반역인지, 구원이 해탈인지 용서인지, 예수가 선지자인지 하나님이신지에 대해 서로 다르게 답합니다. 모두 같은 말을 한다고 하면 어느 쪽의 실제 가르침도 진지하게 듣지 않게 됩니다. 기독교는 하나가 맞고 다른 것은 전부 틀렸다고 말하지 않으며, 참된 것이 곳곳에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답을 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이 문제는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기독교인이 저지른 일을 보라." 이것은 가장 아픈 반론이고, 인정해야 할 부분이 큽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종교 재판과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고, 노예 제도를 옹호하거나 방관한 시대가 있었으며, 지금도 학대와 위선이 교회 안에서 드러납니다. 예수의 이름을 내세운 폭력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가장 큰 모순입니다. 다만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는 기독교가 참인가 하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인이 그 가르침대로 살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완전하리라고 약속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외식하는 자를 가장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또 같은 역사에서 노예 제도 폐지 운동, 병원과 학교, 가난한 이를 돕는 일이 기독교 신앙에서 나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이 잘못을 지우지는 못합니다. 다만 잘못이 기독교의 마지막 판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가 믿음을 결정할 뿐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불교나 유교,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인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다른 영향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모든 신앙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난 환경이 믿음의 진위를 가려 주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환경 때문에 수학도, 과학도, 무신론도 배웁니다. 정직한 대응은 내가 받은 신앙을 한 번은 따져 보는 것입니다. 이 글도 그 따져 봄을 권합니다.

더 생각해 보기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가장 다른 점은 아마 이 한 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르려는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사람에게 이르려는 하나님의 행동이 먼저라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다른 길에 있는 사람을 폄하해도 좋다는 허락은 아닙니다. 바울은 존중하며 말했고, 그리스도인도 그래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자리를 내 행위로 얻으려 하고 있지 않은가? 부활이 사실이라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가 기독교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 가르침 때문인가, 아니면 기독교인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인가?

더 읽으려면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 예수는 누구인가?, 왜 십자가인가?를 보십시오.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 보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출처

  1.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1 —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 쉼이 없습니다.'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