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사랑이란 무엇인가?

짧은 답

성경은 사랑을 감정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하신 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고, 그 사랑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이웃,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부르심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에는 감정과 몸의 반응도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핵심은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데 있습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사랑의 정의를 사람의 경험에서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시작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씁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은 하나님이 사랑을 가끔 베푸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랑이 하나님의 존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성품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근원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그렇다면 그 사랑은 어떤 모습입니까? 성경은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요한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요일 3:16). 예수께서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요 15:13).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먼저 상대에게 가치가 있어서 얻는 마음이 아닙니다. 상대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도 먼저 다가가 값을 치르는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이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립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이 구절에는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 거의 없고 행동과 태도를 나타내는 말이 대부분입니다. 바울은 이 구절을 이렇게 맺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예수께서는 율법 전체를 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두 계명은 모두 구약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는 신명기 6:5에, 다른 하나는 레위기 19:18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중심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멈추지 않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 5:44-45

원수를 사랑하라는 근거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사랑을 하나님 안에서 이해해 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을 이런 기도로 시작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쉼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1.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표시라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질서 있는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좋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사랑의 순서가 뒤바뀌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는 첫째 계명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그 밖의 다른 것이 영혼의 사랑을 위하여 나타난다면, 사랑의 모든 흐름이 달려가는 그 물길 속으로 흡수되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해서 다른 것을 덜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랑이 그 큰 물길 속으로 들어가 제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웃 사랑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웃을 바르게 사랑하는 자는 그 이웃도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그와 함께 힘써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는 또 원수를 사랑하는 길도 제시합니다. 원수 안에 있는 악은 미워하되, 그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선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매튜 헨리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이 이기심의 정반대라고 풀이합니다. "사랑은 이기심의 철저한 원수입니다" 매튜 헨리. 그러면서도 그는 사랑이 자기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남을 해치지 않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분노와 복수심을 품는 사람은 "자기의 고백을 거짓말로 만드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매튜 헨리.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사랑을 가리키는 말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와 그 동사 입니다. 요한일서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의 사랑이 바로 아가페입니다. 이 말은 감정의 세기보다 상대를 향한 헌신과 선택을 가리키는 데 쓰였습니다. 신약 저자들은 이 말에 십자가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 하나는 입니다. 친구 사이의 정, 가까움과 애정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십니다. 처음 두 번은 "나를 사랑하느냐"에 아가파오를 쓰시고,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필레오로 대답합니다 (요 21:15-17). 세 번째에는 예수께서도 필레오로 물으십니다. 많은 해석자는 이 바뀜에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요한이 문체상 말을 바꾸어 썼을 뿐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베드로의 부족한 사랑을 받아 주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맡기셨다는 점입니다.

구약에서 "사랑하다"의 기본 동사는 입니다. 신명기 6:5와 레위기 19:18에 모두 쓰인 말입니다. 구약의 사랑을 이해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또 하나의 말은 입니다. 언약에 대한 신실함, 끝까지 변치 않는 사랑을 뜻하는 말로, 개역한글에서는 흔히 "인자"나 "자비"로 옮겨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흔들릴 때에도 헤세드로 그들을 붙드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약속에 충실한 사랑임을 보여 줍니다.

흔한 반론과 답

"사랑은 그저 감정일 뿐이다." 이 반론에는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기쁨과 애틋함과 아픔이 있고, 감정이 전혀 없는 사랑은 차갑게 느껴집니다. 성경도 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감정뿐이라면, 감정이 식는 순간 사랑도 끝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랑을 "명령"합니다. 감정은 명령한다고 생기지 않지만, 상대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는 선택은 명령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사랑은 선택과 행동이 먼저이고, 감정은 그 뒤를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원수에게 정다운 마음이 들라는 뜻이 아니라, 그를 위해 기도하고 선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사랑은 뇌 속 화학 작용일 뿐이다." 이 반론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나 아이를 안을 때 옥시토신이나 도파민 같은 물질이 작용한다는 것은 실험으로 확인됩니다. 그러니 사랑은 화학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에 몸의 작용이 따른다는 것과 그 일이 오직 몸의 작용이라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수학 문제를 풀거나 슬퍼할 때도 뇌에서는 화학 반응이 일어나지만, 그것으로 그 생각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몸과 영혼이 하나인 존재로 보기 때문에, 사랑에 몸의 작용이 함께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십자가의 사랑이나 원수를 위한 기도처럼 이익도 감정도 따르지 않는 사랑은 화학 작용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그리스도인들은 생각합니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어느 설명이 사랑의 전체 모습을 더 잘 담는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사랑이면 다 받아 주어야 하지 않는가." 오늘 사랑은 흔히 무엇이든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랑이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고전 13:6). 아이가 위험한 곳으로 가는데 그냥 두는 부모는 사랑하는 부모가 아닙니다. 성경의 사랑은 상대가 정말 잘되기를 바라기에 때로는 바로잡고 때로는 아픈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성경이 보여 주는 사랑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가"보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가"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에 눌린 사람에게 이것은 쉼이 됩니다. 사랑은 먼저 받는 것이고, 받은 사랑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지금 내 삶에서 사랑이 감정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은 누구이며, 그를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입니까?

더 읽으려면 하나님은 누구신가?와 은혜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출처

  1.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1 —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 쉼이 없습니다.'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