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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란 무엇인가?

짧은 답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잘되겠지" 하는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확신 있는 기대입니다. 소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인내로 기다리게 하고,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게 합니다. 그 끝에는 눈물이 씻기고 만물이 새로워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성경의 답

일상에서 소망은 흔히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뜻합니다. 성경의 소망은 다릅니다. 성경에서 소망은 하나님이 약속하셨기에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바라는 마음의 세기가 아니라 약속하시는 분의 신실하심이 그 무게를 정합니다.

히브리서는 이 소망을 배에 비유합니다. 폭풍 속의 배를 붙드는 것은 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히 6:18-19

닻은 배 안에 있지 않고 휘장 안, 곧 하나님의 임재 안에 던져져 있습니다. 그 닻줄을 쥐고 계신 분은 우리를 위해 먼저 들어가신 예수이십니다 (히 6:20). 소망이 견고한 까닭은 우리의 마음이 단단해서가 아니라 닻이 놓인 곳이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중심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씁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3-4

"산 소망"은 살아 있는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분이 계시기에 그 소망도 죽음 앞에서 꺼지지 않습니다. 이 소망에 근거가 있는지는 예수께서 정말 부활하셨는가라는 물음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은 소망 없는 사람처럼 슬퍼하지 말라고 권하며 (살전 4:13), 그 근거를 그리스도의 부활에 둡니다.

그러나 소망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을 때에 필요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8:24-25). 소망은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 기다림은 빈손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룬다고 하며, 그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합니다 (롬 5:3-5). 소망의 보증은 이미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

소망은 폐허 한가운데서도 말해집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이 무너진 뒤에 쓰인 슬픔의 책입니다. 그 한가운데서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애 3:21-23

시인은 상황이 나아져서 소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회상"하기에 소망을 말합니다. 소망은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성경이 그리는 소망의 끝은 새로워진 세상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보좌에 앉으신 이는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 21:5).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이 세상에서 도망쳐 영혼만 구원받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피조물 전체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는 데 있습니다 (계 21:3).

교회의 증언

교회는 소망을 신앙의 중심에 두어 왔습니다. 사도신경은 몸의 부활과 영생을 고백하며 끝납니다 사도신경.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첫 물음에서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내가 몸도 영혼도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으로 답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 이 소망은 상황이 아니라 소속에 근거합니다.

매튜 헨리는 베드로전서 1장을 풀이하며 세상의 소망과 성경의 소망을 구별합니다. "세상의 말로 소망이란 불확실한 좋은 것만을 가리킵니다" 매튜 헨리.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의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매튜 헨리. 히브리서 6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의 소망은 이 세상의 풍랑 속에서 우리의 닻입니다" 매튜 헨리. 그가 애가를 풀이하며 남긴 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거스르는 것뿐 아니라 우리에게 유리한 것도 살펴야 합니다" 매튜 헨리. 소망은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 아니라 현실 전체를 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이 어떤 모습인지,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순서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해석이 갈립니다.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상징으로 읽는 이도 있고, 더 문자적으로 읽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것, 죽은 자가 몸으로 부활하리라는 것,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시리라는 것은 교회가 한결같이 고백해 온 소망입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소망은 입니다. 일상 헬라어에서 이 말은 앞날에 대한 기대를 가리키는 폭넓은 말이었고, 기대가 확실한지 막연한지는 문맥에 달려 있었다고 설명됩니다. 신약은 이 말을 하나님의 약속과 부활에 묶어 확신 있는 기대로 채웠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5의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이 가능합니다.

로마서 8:25에서 "참음"으로 옮겨진 말은 입니다. 이 말에는 "아래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 담겨 있어 짐 아래에서 도망치지 않고 견디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소망은 수동적인 체념이 아니라 견디는 힘이 됩니다.

구약에서는 예레미야애가 3:24의 "바라리라"가 입니다. "기다리다"와 "바라다"를 함께 뜻하는 말로, 기다림과 소망이 한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애가의 시인은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고 말합니다. 기다림의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몫이시기 때문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소망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이 반론에는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일도 바라며, 종교가 괴로움을 달래는 위안으로 쓰인 적이 있다는 지적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망을 바람의 크기가 아니라 근거로 구별합니다. 베드로는 소망을 부활에 묶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면 소망은 근거가 있는 것이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바울이 스스로 인정하듯 이 소망은 헛됩니다 (고전 15:19). 그러니 이 반론은 결국 역사적 물음, 곧 부활의 증거에 대한 물음으로 돌아갑니다. 증거를 살피는 일은 그 질문에서 다룹니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증명이 아니라 증거와 신뢰에 서 있다는 점입니다.

"내세의 소망은 이 세상의 불의를 참게 하는 아편이다." 이것도 진지한 반론입니다. 실제로 하늘의 소망을 핑계로 땅의 고통을 외면한 그리스도인이 있었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소망은 이 땅을 버리는 소망이 아니라 이 땅을 새롭게 하시리라는 소망입니다. 바울은 피조물 전체가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기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롬 8:21).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면 지금의 고통과 불의는 정상이 아니라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병든 이를 돌보고 약한 이를 변호한 것도 이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기대하지 않는 편이 실망하지 않아서 낫다." 이 말은 상처 입은 사람의 지혜일 수 있습니다. 소망을 걸었다가 무너져 본 사람에게는 소망이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성경은 모든 바람이 이루어진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병이 낫기를,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 땅에서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소망은 특정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 닻을 내립니다. 애가의 시인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걸린 소망은 부끄럽지 않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더 생각해 보기

성경의 소망은 먼저 사람이 마음먹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소망을 채워 주시고 (롬 15:13),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부어 주십니다. 소망이 없다고 느끼는 날에도 소망은 내 감정이 아니라 닻이 놓인 곳에 달려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소망을 걸고 있습니까? 그것은 내 힘이나 상황에 달려 있습니까, 아니면 약속하신 분께 달려 있습니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기다리는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더 읽으려면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와 고난에 의미가 있는가?를 보십시오.

출처

  1.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AI가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썼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